선풍기 악몽.

비가 올 거면 아예 시원하게 쏟아질 것이지, 이도 저도 아닌 찔금대는 장마철이었다.

어두운 방 안은 불쾌하게 끈적거리고 더웠다.

반쯤은 잠이 들었고 또 반쯤은 잠들지 못한 A는 몸을 굴려 휴대폰 액정에 떠오른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3분. 아까 확인한 때로부터 약 한 시간 반이 지나간 셈이다.
결국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아침이 되겠군. 한숨이 나왔다.
A는 다시 몸을 돌려 천장을 보고 누우려다 B의 등과 부딪혔다.
A 옆에 누운 B는 이런 불쾌한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곤히,잘만 자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는 분명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지 않았나…?
잠들기 전 분명, B가 맞춰 놓았을 타이머가 다 돌아간 모양 선풍기는 고요하게 멎어 있었다.
몸에 닿는 이불이 척척하고 꿉꿉했다.
평소 선풍기니 에어컨이니, 인공적인 바람은 정말 싫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 A였지만
이쯤되니 도저히 이 짜증나는 공기를 견딜 수가 없다.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선풍기를 틀고 다시 누웠다.
위잉 선풍기가 돌아가며 약한 바람이 두 사람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다지 시원하진 않지만 그런 눅눅한 바람이나마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너도 더운가봐?”
죽은듯이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B가 중얼거린다.
“그러게, 이건 진짜 너무하네.”
A가 대답하고 두 사람은 다시 잠을 청했다.
눈을 감은 A의 귓가에 들려오던 선풍기 소리가 점차 거슬리는 소음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무래도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이상했다.
보통 선풍기라는 게 이렇게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던가..?
소리는 A의 머릿속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듯
….아니,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건가?
이상하다.
A는 눈을 떴다. 
마침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선풍기의 소음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마치 날개가 어딘가에 닿는 것처럼 긁어대는 소음이 일어났다.
“저거 왜저래..”
잘 때는 웬만하면 업어가도 모를 B조차도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귀찮은지 눈은 감은 채였다.
“저거 산지 좀 되긴 했지, 그냥 꺼야겠다.”
결국 조금 더 아쉬운 A 쪽이 부시시 몸을 일으켜 선풍기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선풍기는 멈추지 않았다.
잘못 눌렀나? 다시 몇번 더, 좀더 짜증을 담아, 거칠게 정지 버튼을 눌렀지만…
선풍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그대로였다.
“왜그래?”
어느 새 B도 일어나 앉아 A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네….선풍기가 안꺼져. 버튼이 끼었나?”
말을 듣지 않는 버튼과 씨름하는 A가 한심해 보였는지 B가 일어나서 선풍기 뒤쪽 벽을 봤다.
“완전 고장났구만….그냥 코드를 뽑아 버리자………어?”
원래라면 선풍기 코드가 꽂힌, 콘센트가 붙어 있어야 할 벽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아니 콘센트는 그대로였지만…선풍기와 각종 코드들이 꽂혀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아무리 봐도 이건 사람의 하반신인 것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인지 뭔지 모를 것의 다리의 주인은 마치 하반신부터 밖으로 나오려던 듯한 모습으로,
벽에 붙은 콘센트에서, 헐벗은 두 다리만 비집고 나와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작은 단자로부터 억지로 삐져나온 허벅지의 끝부분 정도부터는 좁은 구멍에 끼어 당장이라도 풍선마냥 터질 듯 해 보였고.
애초에 그런 곳에서 사람의 다리 사이즈의 물건이 나올 수 있다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게 말도 안되는 광경이었지만 새벽 빛을 받아 허옇게 빛나는 다리의 매끄럽고 털도 없는 표면이나, 가지런한 발톱,
그 아래 바닥으로 던져진 그림자는 너무나 현실처럼 생생했다.
“저게 뭐야?”
B의 시선을 따라간 A는 잠이 깨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다닥 일어서며,저도 모르게 B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어떡하지…저러면 선풍기를 못끄겠는데..”
아직 꿈에서 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건지, B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때,
파다다다닥!
갑자기 미동도 없이 늘어져 있던 정체불명의 두 다리가 미친듯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드러난 그것의 맨발과 맨살이 요가 깔리지 않은 주변 장판을 요란하게 철썩거리며 때렸다.
그에 맞춰 선풍기도 예의 귀를 긁는 듯한 커다란 소음을 뿜어내며 마구 들썩거렸다.
“으아아악!”
A는 비명을 지르며 B를 잡아끌고 방에서 뛰쳐 나갔다.
아직도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린 거실을 가로질렀다. 
평소엔 몇 걸음도 안되는 작은 거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끝의 현관문이 너무나 멀어 보였다.
A와 B의 뒤에서 낡은 선풍기의 요란한 소음과 맨살이 철썩대며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빠르게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현관문 잠금을 푸는 그 잠깐 사이 따라잡히는 것은 아닐까?
순간의 판단으로 A는 현관 바로 옆 화장실로, B부터 밀어넣고 자신도 뛰어들어 문을 빠르게 닫았다.
곧바로 선풍기인지 그 알 수 없는 뭔가인지가 닫힌 화장실 문을 당장 부술 듯 쾅쾅,세게 부딪혀왔다.
A는 비명을 질러대며 화장실 문을 잠그고 몸으로 버텼다.
B는 변기를 껴안다시피 한 자세로 화장실 바닥에서 A를 절망적으로 바라봤다.
“…어떡하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화장실엔 작은 창문조차 없이 후드만 돌아가고 있어서, 바깥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는 채로
A와 B는 여전히 좁고 무더운 화장실 안에 갇혀 있었다.
선풍기는 끊임없이 문에 부딪다가 뚜껑이라도 날아간 것인지 
나중에는 돌아가는 선풍기 날이 화장실 문의 나무 표면을 긁어대는 소리까지 들려 왔었다.
그것의 안으로 들어오려는 노력(어째서?)은 몇번이고 계속되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조금 전부터 소리가 뚝 그쳤다.

“이제 가만있는 것 같지 않아?”
“응..”
A와 B는 조용히 서로를 마주봤다.


이제 문 밖은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A와 B는 칙칙한 백열 조명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좀더 기다려 보았다.
찬 물이라도 틀어 씻어라도 보자든가,그런 한가한 생각 따위는 나지도 않았다.
어서 여기서 나가고 싶을 뿐.
A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문을 열어보면 어떨까…?
그런데 만약
문을 열었을 때 뚜껑이 떨어져 나간 낡은 선풍기가 여전히 눈 앞에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면 어떻게 하지?
거기에 만약,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든 결국 콘센트에서 완전히 나오는 것에 성공했다면?
아니, 애초에 그것이 나오려던 중이긴 했는지, 보이던 부분 외에 일반적인 상반신 같은 게 달려 있기는 했을지.
어쨌든 그 뒤는 어떻게 될지 A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그저 여느 때처럼 날이 밝아온 익숙한 거실 풍경을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낡은 선풍기도 얌전히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상한 두 다리의 주인도 사라져,아니 원래부터 그런 것 따윈 없었던 것일지도…
이 모든 게 그냥 우연히 두 사람이 함께 본 여름밤의 악몽,환각, 뭐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에서 나가는 대로 그 고물 선풍기부터 당장 밖에 내던져 버릴 거라고, A는 생각했다.
A는 B에게 눈짓을 하며 화장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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